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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뉴스

화순 운주사 석불, 미완의 거대한 불상 미스터리

by newsplus1 2025. 5. 6.

화순 운주사에 자리한 석불과 석탑군은 한국 불교 조형미술사에서 가장 기이하고 신비한 유산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고려 후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이 조각군은, 정형화된 불교 도상과는 다른 자유로운 형태와 불완전한 조형이 특징이며, 아직까지도 정확한 조성 시기, 제작자, 목적이 확정되지 않아 학문적 논의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본문에서는 국립문화재연구소, 한국미술사학회, 조각사 관련 주요 학자들의 연구를 바탕으로 운주사 석불과 석탑군의 역사, 구조, 조형적 특성, 그리고 상징적 해석을 종합적으로 분석하며, 미완의 유산으로서 갖는 학술적 가치를 짚어본다.

운주사의 역사와 석불 조성의 배경

화순 운주사는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에 위치한 사찰로, 주변 자연 경관과 함께 비정형적이고 대규모 석불군이 산재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및 『동국여지지』 등 조선시대 지리지와, 20세기 초 일본 학자들의 조선고적조사보고서에는 운주사의 석불이 고려 말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는 기록이 있으며, 이들이 대개 미완 상태로 남아 있다는 점에서 미술사적 미스터리로 여겨져 왔다. 특히 이 석불군은 일정한 양식이나 통일된 도상 체계를 따르지 않고, 각기 다른 비례와 구성을 띠고 있어 조성 주체나 의도가 단일하지 않았음을 암시한다. 이러한 점은 운주사가 단순한 불사 수행 공간을 넘어 다양한 사회 신앙적 요소가 교차된 복합적인 종교 공간이었음을 시사한다. 일부 학자들은 운주사의 석불 조성이 중앙집권적 양식의 통제를 벗어난 지방적 특성을 반영한 결과물이며, 이는 당시 지역의 신앙 및 권력 구조와 깊은 연관이 있다고 본다. 서울대학교 미술사학과 김영나 교수는 『고려시대 불교 조각의 흐름과 변천』(1999)에서 운주사 석불에 대해 고려 불교의 민간화 경향과 비정형적 불교 조각의 대표 사례로 정의하며, 정형화된 도상 체계를 벗어나 지역성과 신앙적 실천이 결합된 결과물로 분석한다. 그는 특히 이 유산이 불교 교단 중심이 아닌, 하층 민중 또는 지역 권력층의 주도 아래 제작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조각의 양식과 구조 분석

운주사에는 현재 약 100기 이상의 석불과 석탑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대표적으로는 거대한 와불, 석탑 형상, 좌불, 입불, 미륵불로 추정되는 석상 등이 있다. 이들 대부분은 거칠고 단순한 형식으로 제작되어 있으며, 조형적 세부가 다듬어지지 않은 채 남아 있어 제작 도중 중단된 것으로 보인다.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운주사 석조유물 실측조사 보고서』(2004)에서는 와불의 크기를 약 12m에 달하는 대형 조각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내부 석질의 균열과 제작 방식, 운반 흔적 등을 통해 산지에서 직접 조각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하였다. 또한 동일 보고서에서는 석불들이 불균형한 형태로 놓여 있는 점에 주목하며, 조성 의도가 일괄된 불사보다는 장기간에 걸쳐 단계적으로 제작된 것임을 시사한다.

특히 석불의 얼굴, 손, 법의 표현 등에서 고려 후기 전통 불상의 규범과는 다른 특징이 발견된다. 『한국불교조각의 형성과 해체』(조용훈, 2015, 동국대출판부)에서는 운주사의 조형은 세밀한 장엄성이 아닌, 전체 형상을 통한 기의 표현이 목적이었으며, 이는 고려 말기 민간 불교의 흥기와도 연결된다고 분석한다. 이러한 비정형성은 단순한 미완성이 아닌, 의도적 생략 또는 신앙적 상징 표현일 가능성을 제기한다.

석탑군의 배치와 풍수적 해석

운주사 석탑군은 단순히 종교 건축물의 의미를 넘어서, 공간적 배치와 상징적 구성에서도 주목받는다. 현재까지 20여 기의 석탑 흔적이 확인되며, 대부분의 탑은 정형적인 삼층석탑이나 오층석탑 형식을 따르지 않고 자유롭게 배치되어 있다.

풍수지리학적으로 운주사는 '용의 등줄기'에 해당하는 산세 위에 건립되어 있으며, 조선 후기 풍수지리서인 『지리비결』에는 운주사를 '백룡이 꿈틀대는 혈처'로 언급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한 학자들은 석불 및 석탑의 배치가 단순한 종교적 목적 외에도 지기(地氣)를 보완하거나 특정 풍수적 목적을 위한 공간 장치로 이해한다.

건축학자 이형구는 『고려 불교 건축의 공간미학과 음양론』(한양대 건축사 논문, 2012)에서, 운주사의 탑과 불상 배치는 음양오행론에 근거한 신성 공간 조성으로, 탑과 불상의 방향, 간격, 높낮이가 음양균형을 이룬다고 주장하며, 이를 자연과의 융합적 건축사례로 설명한다. 이러한 공간 배치에 대한 해석은 운주사가 단지 미완의 불사 현장이 아닌, 고도의 철학적, 과학적 사고가 개입된 신성 조성 공간임을 시사한다.

고려 후기 불교의 대중화와 운주사의 특수성

운주사 석불은 형식 면에서 기존 불교미술과 괴리를 보이지만, 바로 그 점이 고려 후기 불교의 변화를 보여주는 지표가 된다. 송광사, 해인사 등의 교단 중심 사찰과 달리, 운주사는 지역 기반의 신앙 중심지로 기능한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조선 초기의 억불 정책 이전, 말기의 불교 대중화 흐름과 연결된다.

동국대학교 문화재학과 박혜원 교수는 『지방 불교 유산의 형성과 미술사적 함의』(2020)에서, 운주사의 불상은 교단 이념에 맞춰 제작된 것이 아니라, 지역 주민의 신앙적 욕망이 반영된 실천적 조형물로서, 정형성보다 접근성과 감응성이 강조된다고 평가하였다. 그는 특히 불상에 새겨진 비문이나 도상 형식이 결여된 점을 들어, 이는 형식적 불교에서 민간신앙으로 이행되는 과도기의 유산일 수 있음을 지적한다.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와 보존 방향

현재 운주사 석불 및 석탑군은 사적 제31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문화재청과 전라남도의 공동 관리를 통해 보존과 복원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3D 디지털 복원, 석조물 보존 처리, 침식 방지 조치 등 현대 기술을 활용한 과학적 보존이 시도되고 있다.

또한 운주사는 대중에게 미술사와 종교사를 아우르는 교육 콘텐츠로도 활용되고 있으며, 학술 세미나, 문화제, 지역 축제 등에서 석불의 상징성과 의미를 재조명하는 작업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전남대 고고미술사학과는 2021년부터 운주사 석불의 도상 분석 및 문화해석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석불에 대한 3D 스캔 자료와 도상학적 재분류를 통해 보다 정밀한 학술 자료화를 진행 중이다.

운주사 석불의 공간 구성과 불교의례의 상관관계 또한 학문적 조명을 받고 있다. 동국대학교 김정섭 교수는 『고려 불교 의례와 사찰 공간구성의 상관관계 연구』(『한국불교학연구』, 2016)에서 운주사의 배치가 단순 조형이 아니라, 순례자들이 불상을 돌며 기도하고 발원하는 의례 동선으로 구성되었음을 제시했다. 특히 천불 조성 구역에서의 초석 배열은, 보살행 기도회 또는 영산회상과 같은 집단 불교의례의 재현 공간일 수 있음을 시사하며, 이곳이 수행자 중심의 신앙 실천 공간이었음을 뒷받침한다.

운주사 조영자에 대한 가설 연구

운주사를 누가, 어떤 목적으로 조영했는지는 오늘날까지도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채 다양한 학설로 남아 있다. 가장 대표적인 설은 고려의 개국 군주인 태조 왕건이 후삼국 통일을 기념하여 조영했다는 ‘태조 왕건 조영설’이다. 이 가설은 《고려사》 및 일부 민간 전설을 근거로 하며, 운주사의 석불과 석탑이 전국 통일의 이상을 담은 불국토 구현이라는 상징성을 가진다는 해석에서 출발한다.

이에 반해, 지역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제기된 또 다른 설은 전남 지역의 유력 지방 호족 세력이 독립적으로 운주사를 조영했다는 지방 호족 조영설이다. 『화순 지역 불교사 연구』(전남대학교 지역문화연구소, 2011)에 따르면, 운주사의 불상 조성 시기와 유물 양식이 중앙 정부보다 지역 주도적 흐름에 더 가깝다는 점을 강조하며, 지방 호족이 자신의 정치적 권위와 불교적 후원을 동시에 표현하기 위한 상징 공간으로 해석한다.

최근에는 두 설을 절충하는 제3의 관점도 등장하였다. 조선대 박영규 교수는 논문 『운주사의 조영세력과 그 정치적 맥락』(2020)에서 운주사는 중앙의 이상을 반영하되, 지방세력의 경제적 자율성과 불교 신앙이 결합된 결과물이라 분석하며, 조영자는 하나가 아닌 다수의 세력이 공동으로 참여한 복합적 조영 구조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논의는 단순히 조영자의 정체를 밝히는 것을 넘어, 당시 사회 구조와 불교 권위의 작동 방식에 대한 해석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석불 제작기법 및 재료 분석

운주사 석불과 석탑은 대부분 현지에서 채석한 화강암(花崗岩)으로 제작되었다. 이 석재는 전남 지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자재이며, 경도가 높고 풍화에 강해 대형 조각에 적합하다.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운주사 석불군 정밀실측 및 재질 분석 보고서』(2015)에 따르면, 운주사 석불은 기계적인 대칭보다는 인체의 비례를 직관적으로 재현한 조각 방식이 특징이며, 이는 고려 후기에 유행하던 소박한 불상 조형의 흐름과도 일치한다.

조각 기법 측면에서는 직접 타격식 조각법이 주로 사용되었으며, 세부 표현이 정교하지 않고 굵은 선과 단순한 면 처리로 구성된 것이 다수다. 이는 미완 상태의 영향일 수도 있으나, 의도적인 생략 기법이라는 주장도 있다. 동국대학교 김혜원 교수는 논문 『운주사 석불 조각기법과 신앙적 상징성에 대한 고찰』(2018)에서 거대한 크기의 불상이 정교함보다는 압도적인 존재감으로 신앙적 감응을 유도하려는 목적이 있었으며, 이는 고려 후기 불교 예술의 새로운 흐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또한, 석불과 석탑의 기단 및 접지 면에는 침식 방지를 위한 배수 홈과 수직 절단선이 남아 있어, 실용성과 장기적 내구성을 동시에 고려한 설계가 이루어졌음을 시사한다. 이는 단순 조형물이 아닌 구조물로서의 개념이 반영된 사례로, 석불과 석탑이 종교적 기능 외에도 건축적환경적 요소까지 고려한 다층적 유산임을 보여준다.

학술적 의의와 미래 과제

운주사 석불과 석탑군은 한국 불교 유산 중에서도 그 희소성과 미완의 신비로 인해 독특한 위상을 지니고 있다. 본 유적의 가치는 조영자의 배경, 신앙의 이상, 조각 기술의 특수성 등 여러 층위에서 학문적으로 접근할 수 있으며, 현대적 관점에서도 여전히 해석과 조명의 여지를 제공하고 있다. 앞으로도 운주사에 대한 다학제적 연구가 지속됨으로써, 이 유적이 단지 전설과 미스터리의 대상으로 머무르지 않고, 고려 불교 문화와 조형 예술의 정수로서 더 깊이 이해되기를 기대한다. 또한, 고려 후기의 종교적 흐름, 민중적 신앙, 철학적 공간 개념이 복합적으로 반영된 한국 불교문화의 미해명 유산이다. 조형적 불완전성이 오히려 해석의 다층성을 제공하며, 이는 동시대 정형적 조각과 구분되는 고유한 예술성과 신앙성을 갖추고 있음을 입증한다. 향후 더욱 정밀한 학술 연구와 지속 가능한 보존을 통해, 이 유산은 미완의 형태 속에 완전한 사유를 담고 있는 공간으로 새롭게 조명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