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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뉴스

창녕 술정리 동삼층석탑 통일신라 양식 변천과 독립성

by newsplus1 2025. 5. 7.

창녕 술정리 동삼층석탑은 통일신라 시대 석탑 건축의 형식이 지역적으로 어떻게 분화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산이다. 경상남도 창녕군 술정리에 위치한 이 석탑은 전형적인 중앙 양식에서 일부 벗어난 구조적 특성과 조형미를 지니고 있어, 학계에서는 통일신라 석탑 양식의 말기적 변화를 보여주는 사례로 주목하고 있다. 특히 국립문화재연구소와 한국건축역사학회를 중심으로 진행된 실측조사와 학술논문들을 통해, 이 석탑은 단순한 종교적 상징물 이상의 지역성, 기술성, 조형성을 지닌 구조물로 해석되고 있다. 본문에서는 술정리 동삼층석탑의 구조적 특징, 형식 변천, 조형적 의의, 그리고 통일신라 말기의 지역 불교 건축 문화와의 관계를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창녕 술정리 석탑의 기본 개요와 지정 현황

이 석탑은 창녕군 창녕읍 술정리의 야트막한 평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1963년 국보 제33호로 지정되었다. 높이는 약 5.3m로, 일반적인 삼층석탑 형식을 따르되, 기단부와 탑신부에서 뚜렷한 변형이 관찰된다. 현재 탑은 비교적 온전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으며, 20세기 후반과 21세기 초에 걸쳐 두 차례 정밀 실측 및 구조 보강 작업이 이루어졌다.

국립문화재연구소의 『한국 석탑 실측조사보고서: 술정리 석탑 편』(2012)에 따르면, 이 석탑은 전형적인 통일신라 양식과는 다소 다른 형태적 구성을 보인다. 예를 들어, 기단부의 높이가 낮고 탑신부가 상대적으로 강조되어 있으며, 옥개석의 곡선 처리도 중앙 양식보다 완만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는 통일신라 후기 지역에서 전개된 독립적 조형 양식의 일환으로 해석되고 있다.

구조적 특징과 기술적 분석

술정리 석탑은 단층 기단 위에 삼층의 탑신을 얹은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하층 기단은 판석을 이용해 비교적 간결하게 구성되어 있으며, 상대 기단에는 간결한 면석과 받침대가 배치되어 있다. 탑신은 점차 작아지는 비율로 구성되어 있으며, 몸돌과 지붕돌이 일체형으로 가공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지붕돌의 낙수면은 경사가 완만하고 추녀 부분의 반전이 거의 없는 점에서 통일신라 전형 양식과 차이를 보인다.

건축학자 김진규 교수는 논문 『통일신라 후기 석탑의 비례 변화와 지역성 연구』(『한국건축역사학회지』, 2016)에서, 술정리 석탑의 지붕돌은 구조적으로 하중을 분산시키기보다는 장식성과 형식성을 강조한 구성으로 해석되며, 이는 당시 중앙 양식이 점차 지역화되면서 실용적 기능보다는 상징성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한 흐름의 일환으로 분석하고 있다. 또한, 탑신부 몸돌의 높이 비율이 다른 지역 삼층석탑에 비해 크고, 옥개석의 계단이 비교적 얕게 처리되어 있다는 점에서도 지역적 조형 감각이 반영되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조형성과 상징성, 불교적 의미

이 석탑의 또 다른 특징은 장엄한 비례감과 안정된 구조 속에 지역적인 미감이 함께 드러난다는 점이다. 통일신라 중기까지의 석탑들이 통일된 양식을 따랐다면, 술정리 석탑은 그 양식의 틀 안에서 벗어나 지역 불교 신앙의 상징물로서 조형된 것으로 이해된다.

동국대학교 불교미술사 연구소의 이형철 교수는 『불교 조형에 나타난 통일신라 후기의 지역 표현 양상』(2020)에서, 술정리 석탑이 갖는 불교적 상징성은 단지 법신불(法身佛)의 표현에 그치지 않고, 지역 공동체의 신앙 결속을 위한 조형물로서 기능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하였다. 특히 이 석탑이 도심지가 아닌 비교적 한적한 농촌 평지에 세워졌다는 점은, 수도 중심의 교단 불교에서 민간 중심 신앙 불교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조형적 지표로 평가된다.

이는 석탑이 단순히 경전을 봉안하는 수단을 넘어, 공동체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신앙의 구심점이었음을 암시한다. 나아가 조형성과 상징성을 통해 지역 주민의 정신적 위안과 사회적 결속을 동시에 도모했던 문화적 장치로 이해할 수 있다.

재료 분석과 석재 가공 기술의 특징

창녕 술정리 동삼층석탑은 사용된 석재의 물성과 가공 방식에서도 독특한 특징을 보여준다.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석조문화유산 보존기술 보고서』에 따르면, 술정리 석탑은 비교적 입자가 치밀하고 경도가 높은 화강암 계열의 석재를 사용하여 내구성을 확보하였다. 이 석재는 인근 채석장에서 채취된 것으로 추정되며, 현장에서 1차 가공 후 현장 조립 방식으로 조성된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지붕돌과 몸돌의 접합 부위에서는 정교한 장부맞춤 흔적이 발견되며, 이는 단순한 적층 구조가 아닌 고도의 설계 및 시공 기법이 적용되었음을 보여준다. 옥개석의 하단부에서는 일종의 수직 홈이 존재하는데, 이는 석재 간 밀착도를 높여 구조적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전통적 방식이다. 이러한 세부 요소들은 당시 장인의 경험적 기술이 고도로 축적되어 있었음을 증명하며, 현대의 석조문화재 보존기술과도 연계하여 평가받고 있다.

또한, 미세 조각 도구의 흔적이 확인된 부분에서는 당시 금속 도구의 사용 방식과 조각 선의 방향성까지 분석이 가능하여, 술정리 석탑이 단지 종교적 상징물만이 아니라, 당시 석공 기술의 수준을 가늠하는 귀중한 물증임을 뒷받침한다. 이는 한국 석탑사에서 지역별 석공 집단의 기술 차이를 비교 분석하는 연구에서도 중요한 사례로 활용되고 있다.

주변 유적과의 공간적 연계 및 신앙적 맥락

술정리 석탑은 독립적인 조형물로 보이지만, 고고학적 발굴과 지표 조사 결과 인근에 사지(寺址)나 기타 불교 관련 유구가 함께 존재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창녕 지역은 고분과 고대 토성과 함께 다양한 불교 유적이 혼재하는 지역으로, 석탑 역시 단일 구조물이 아니라 특정 사찰의 중심 구조물로 기능했을 가능성이 있다.

『통일신라 사찰의 공간구성에 관한 연구』(한국불교건축학회, 2019)에서는 술정리 석탑이 단독 불탑으로 세워졌더라도, 주변에 예배 공간이나 보살상을 안치한 전각이 배치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술정리 석탑은 불교적 의례와 공간구성 속에서 순례와 예배의 중심으로 기능했을 수 있으며, 단지 조형적 구조물이 아닌 신앙 실천의 중심 축이었다고 해석된다.

탑돌이, 기도, 발원 의식 등 당시 민간 불교 의례와의 관계도 학문적으로 주목받는다.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소는 『통일신라 지방 불교와 민간 의례』(2022)에서 지방 석탑 주변의 민간 제례 흔적과 관련 설화를 분석하며, 술정리 석탑이 지역 주민의 신앙과 공동체 결속을 위한 구조물로 기능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맥락은 석탑이 단지 건축물이 아닌, 종교적 중심체이자 공동체 기억의 상징물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통일신라 후기 건축의 변천과 지역의 독립성

술정리 석탑은 통일신라 후기 석탑 건축이 중앙 집권 양식에서 벗어나, 지역별로 독립적 형태를 추구하게 되는 과도기의 양식을 보여주는 귀중한 사례다. 이 시기의 석탑들은 경주를 중심으로 한 정형석탑에서 벗어나, 외관과 구조, 비례, 조형요소의 간결화와 단순화를 통해 지역 양식의 정체성을 갖추기 시작했다.

『통일신라 석조 건축의 지역적 분화에 관한 연구』(한국문화유산연구원, 2018)에서는 이 시기의 여러 지역 석탑 사례를 비교 분석하면서, 술정리 석탑이 기술적 보수성과 조형적 개성이 공존한 전환기적 유산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즉, 기단부와 탑신부를 구성하는 판석 및 조립 기술은 기존 양식을 따르지만, 비례나 시각적 안정감을 고려한 창의적 조형 감각은 지역 건축가의 손길이 반영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러한 변천은 당시 지방 장인들의 창조적 해석 능력과 불교 조형물에 대한 지역 사회의 주체적 수용 태도를 동시에 반영한다. 중앙에서 내려온 양식을 기계적으로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지역 실정과 신앙적 감성에 맞게 재해석하며 독자적 건축미를 창출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재료 분석과 석재 가공 기술의 특징

창녕 술정리 동삼층석탑은 구조적 구성 외에도 석재의 물성과 가공 방식 측면에서 주목할 만한 특성을 보인다. 석탑에 사용된 주재료는 경남 일대에서 널리 분포하는 중립질 화강암으로, 입자가 치밀하고 풍화에 강해 장기 보존에 적합한 특징을 지닌다.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석조문화유산 보존기술 보고서』(2014)는 해당 석탑의 석재를 분석하며, 현지 채석장에서 직접 가공된 흔적이 보이며, 부재의 모서리 마감과 면 처리에서 섬세한 수공 가공의 흔적이 확인된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이 보고서에서는 탑신부와 옥개석에 나타나는 반복된 끌 자국과 평활 마감 처리를 통해, 제작자들이 단순한 시공이 아닌 정밀한 비례 계산을 바탕으로 구조를 완성했음을 강조하였다. 이는 당시 장인들이 단순한 기능적 축조에 그치지 않고, 시각적 안정성과 상징성을 고려한 고도의 조형 기법을 사용했음을 보여준다. 아울러 옥개석의 낙수면 가공에서는 일률적인 경사가 아닌, 경사의 변화를 통해 하중을 효과적으로 분산시키려는 의도가 엿보이며, 이는 단순 장식물이 아닌 기능성을 고려한 석탑 제작 기술의 정점을 시사한다.

주변 유적과의 공간적 연계 및 신앙적 맥락

술정리 석탑이 세워진 위치는 평지로, 현재는 독립된 석탑만 남아 있으나, 고고학적 조사 결과 이 일대에 사지(寺址)로 추정되는 기단 흔적과 석축, 기와편 등이 산재해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에 따라 술정리 석탑이 과거에는 사찰 중심의 배치 구조 내에 위치했을 가능성이 높으며, 이는 석탑이 단독 조형물이 아니라 불교 예배 공간의 일부였음을 시사한다.

『경남 불교유적 분포와 공간구성 연구』(경남문화재연구원, 2019)는 창녕 일대의 사찰 유적과 석조문화재를 종합 분석하면서, 술정리 석탑이 위치한 공간은 과거 불교 의례 및 교육의 중심지 역할을 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특히 석탑과 주변 지형의 관계, 인근 고분과의 거리, 배치 방향 등을 통해 이 석탑이 특정 제의 또는 불교 행사와 긴밀히 연결되었을 수 있다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또한 탑이 평지에 세워졌다는 점은 지역 공동체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배려였으며, 당시 불교가 단순한 귀족 중심 신앙이 아닌, 민중 신앙으로 확산되는 과도기에 있었음을 반영하는 상징적 조형물로 평가된다. 이는 불탑이 법신불의 상징에서 공동체 의례 중심의 신앙 장치로 기능이 확장되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해석할 수 있다.

전통과 독립의 공존, 지방 석탑 건축의 가능성

창녕 술정리 동삼층석탑은 통일신라 석탑 건축이 형식화된 중앙 양식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그 틀에서 벗어나 지역의 독립성과 미감을 반영한 희소한 유산이다. 구조적 단순화, 비례의 조정, 조형성의 실험 등은 단지 기술적 변화가 아닌, 지역 불교 문화의 자율성을 드러내는 문화적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특징은 통일신라 후기의 지역 불교 건축이 단순한 중앙 양식의 복제가 아닌, 스스로의 정체성과 미감을 형성해 나갔음을 보여주는 귀중한 사료다. 이는 각 지방의 장인 정신, 종교적 해석, 공동체 의식이 조형물에 고스란히 반영되었다는 사실을 시사하며, 중앙과 지방의 문화적 역동성이 건축양식에 어떤 식으로 구현되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앞으로 이와 같은 지역 석탑에 대한 구조 분석, 조형 이론, 불교 신앙 변천사에 대한 통합적 연구가 진행된다면, 술정리 석탑은 한국 석탑사 연구에서 지역성과 예외성이 어떻게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독립된 정체성을 만들어갔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