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는 하루를 메모장에 남기거나 스마트폰 일정표에 정리한다. 때로는 SNS에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며 지나간 하루를 복기하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조선 후기에 등장한 특별한 기록물, '일성록(日省錄)'은 그런 질문에 선명한 답을 준다. 단순한 왕실 일지를 넘어서, 그것은 조선을 움직였던 가장 내밀한 국정 기록이자, 정조에서 순종에 이르기까지 151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이어진 통치의 거울이었다. "일성록"이라는 이름 자체도 흥미롭다. '날마다 살핀다'는 뜻의 한자 조합은 단순한 일기장을 넘어, 하루를 책임지는 통치자의 태도와 철학을 담고 있다. 그날 일어난 일들을 정리하고, 잘못된 점은 반성하며, 내일을 계획하는 이 과정은 오늘날의 성찰 저널링과도 닮아 있다.
나를 나답게, 왕의 반성과 성찰의 기록
일성록은 시작부터 남달랐다. 조선 제22대 임금 정조는 어린 시절부터 기록을 남기는 습관이 있었다. 경희궁의 존현각에서 써 내려간 개인 일기, 조년각일기는 훗날 국정일기로 발전했고, 그는 즉위 후에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즉위 9년째, 왕의 하루를 공식적으로 기록하는 체계가 만들어졌다. 바로 일성록이다. 인상적인 점은 일성록이 1인칭 시점으로 기록되었다는 사실이다. 조선의 어떤 공식 기록도 임금 스스로를 "나"라고 표현하지 않지만, 일성록은 예외였다. 이는 왕이 자신의 하루를 객관화하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반성의 의지였다. 정조는 실제로 "나를 나이게 하라"는 구절을 일성록에 남긴 적이 있다. 그 문장은 그의 겸손함과 자각, 그리고 리더로서의 책임감을 가장 단단하게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단순히 하루를 회고한 글이 아니라, 백성의 고충과 재난, 신하의 보고와 논의, 자신의 결정에 대한 재고까지 담겨 있었다. 때로는 감기에 걸려 공부를 중단했다는 소소한 기록도, 때로는 홍수 피해에 대해 고민하는 진지한 고민도 모두 일성록의 한 줄이 되었다. 그것은 마치 스스로를 향한 조용한 편지이자, 어제보다 나은 내일을 위한 마음가짐이었다.
왕의 손에서 시작해 151년 이어지다.
정조가 시작한 이 기록은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았다. 순조, 헌종, 철종, 고종, 순종에 이르기까지 무려 151년간 이어졌고, 총 1만 187장, 232 책이라는 방대한 양으로 축적되었다.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이어진 그 기록의 행렬은 곧 조선이라는 나라가 매일을 얼마나 진지하게 살펴보았는지를 말해준다. 흥미로운 점은 일성록이 철저한 주제별 구성으로 정리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각 일자는 정치, 외교, 민생, 의례 등 다양한 항목으로 구분되어 기록되었고, 제목을 붙여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후대의 왕과 신하들이 실제로 참고할 수 있는 실용적인 정치 자료였다는 뜻이다. 실제로 일성록을 매일 작성했던 왕은 민심을 듣고 기록하는 것을 중점으로 두었다. 일성록을 읽다 보면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바로 '격쟁(擊錚)'이다. 이는 꽹과리나 징을 쳐 억울함을 호소하는 백성의 상소 제도다. 정조는 즉위 이후 격쟁을 허용하며 백성의 직접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했다. 조선왕조실록에 비해, 일성록에는 격쟁의 기록이 무려 40배 이상 더 등장한다. 이는 단지 정조의 개방성과 소통 철학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서, 일성록 자체가 단순한 행정 보고서가 아닌 '백성의 마음을 담은 책'이었음을 의미한다. 왕의 일기는 백성의 눈물까지 기록했다. 그것은 단지 왕의 글이 아니라, 나라 전체의 하루를 품은 글이었다. 매일매일 그날을 기록한다는 일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하루를 살기 바쁜 우리에게조차도, 조선 왕들의 성실한 기록 정신은 오히려 더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일성록
2001년 5월, 일성록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공식 등재되었다. 세계가 주목한 것은 단순히 오래된 기록이라는 점이 아니었다. 왕이 직접 관리하고 살핀 일일 단위 국정 기록이자, 무려 150년 이상 단절 없이 이어진 기록의 지속성과 민심과 국정, 인간적인 고뇌까지 모두 담은 통합적 문서라 할 수 있겠다. 이 기록은 왕정시대의 권위적 문서가 아니라, 책임과 성찰, 그리고 미래를 바라본 통치의 지혜였다. 다른 나라의 군주 기록이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조선의 일성록은 스스로를 반성하고, 잘못을 인정하며 더 나은 내일을 설계한 기록이었다. 이런 특징과 가치들은 디지털 시대에 빛나는 아날로그 리더십으로 재평가되었다. 특히, 오늘날 우리는 넘치는 데이터 속에 살고 있다. 하지만 정보가 곧 지혜는 아니다. 정조처럼 하루를 돌아보며 책임 있게 기록하는 리더가야말로, 시대가 원하는 참된 지도자의 모습일지 모른다. 일성록은 정조의 성찰에서 시작된 한 문장의 힘이었다. "나를 나이게 하라"는 그의 다짐은,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큰 울림을 준다. 하루를 책임지는 리더, 민심을 품은 문장, 통치를 넘어 인간으로서의 자각. 그것이 일성록이 오늘까지 살아 있는 이유다.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것이 아니라, 성찰하고 남기는 자의 것이다. 조선의 왕은 그렇게 자신을 남겼고, 우리는 그 기록을 통해 다시 자신을 돌아본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도, 하루하루를 기록하며 누군가에게 잔잔한 영감을 전할 수 있을지 모른다. 지금 우리의 하루도, 언젠가 누군가의 거울이 될 테니까. 오늘날 서울대학교 규장각에는 이 방대한 기록이 보관되어 있으며, 일부는 디지털화되어 대중에게도 공개되고 있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기록의 가치'는 여전히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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